개발자로 살아온 시간 동안 쌓인 경험 덕분에, 주어진 정보만으로도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추론이 흘러나왔다. 대체로 맞아떨어졌고, 유사한 방식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새로운 개발 정보를 배우거나 공부할 때도, 나는 항상 내가 가진 경험을 바탕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정리해왔다. 그 과정이 익숙했고, 나에게 잘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나는 개발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성장이 멈춘 느낌이 들었고,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점점 자신을 작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소중한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함께 추억을 쌓으며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멈춰 선 채 방향을 잃은 시간 속에서, 우연처럼 찾아온 기회를 붙잡아 여자친구와 세계 여행을 떠났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익숙치 않은 언어와 문화 속에 스스로를 던졌다. 그러는 사이, 조금씩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일상에서 잊고 지냈던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정말 내가 개발을 알고 있는 걸까?’ 이 질문 하나에서 시작된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시작했다.
"개발이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개발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었을까?"
"그 정의는 처음과 지금, 여전히 같을까?"
"만약 달라졌다면, 왜 그렇게 달라졌을까?"
"그 변화 속에서 나는 방향을 잡고, 되돌아보며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혹시 어느새 개발을 단순한 ‘일’로만 여기게 되어, 거기에 고착되어 버린 건 아닐까?"
"그래서 더 이상 흥미를 가지고 찾아보거나,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 건 아닐까?"
"결국 나는 개발을 잃고, ‘일’만 남겼으며, 그마저도 ‘돈’으로만 환산하게 된 건 아닐까?"
나는 개발을 몰랐다. 회사가 원하는 걸, 원숭이처럼 반복하기만 해도 돈을 주었기에. 그 돈을 받기 위해 내 경험과 시간, 그리고 본질인 개발을 팔아버렸다. 개발이 아닌 돈을 보며 일희일비하고 있었다.
본질적인 개발 위에 방향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돈을 받고 고민을 하고, 돈을 받고 코드를 작성했다. 당연히 그렇게 돈을 쫓는 개발을 하니, 성장의 한계는 쉽게 찾아왔다.
회사에서 맡은 일 이외의 스스로 탐구하지 않으니, 성장은 사라졌다. 그나마 이직을 통해 조금의 간극을 메워왔다. 좀 더 좋은 회사를 찾고, 그 회사의 기대치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그만큼의 성장을 한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결국 다시 반복되는 일을 하게 된다.
편안함에 안주한 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자기합리화를 했다.. “원래 그런 거야”, “예전부터 그랬지”, “리소스 부족이니까.” 그런 변명들로 가시를 세우고, 어느 누구도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그렇게 나는 개발을 하지 않고, 돈을 받기 위해 일만 하는 직장인이 되어갔다. 그것도 점점 더 영악해진, 스스로를 작은 우물 속에 가두고, 그 우물이 전부이길 바라는 사람으로.
하지만 이제는 변해야 할 때다.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당당해지기 위해. 무언가에 탓하는 걸 멈추고, 내 문제를 직시하며 행동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그에 맞는 방향을 잡고, 그 중심을 잃지 않아야한다. 본질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외부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좋은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스스로에게 당당한 사람이 되는 길 이다.
개발을 안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고,
개발이라는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하자.